커피와 생각/아침 3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마음도 세탁기에 넣자

아침, 창밖은 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기온이 올라간 걸 증명이라도 하듯 먼지는 더욱 짙어졌고, 답답한 풍경이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다행히 오후가 되자 바깥 풍경은 다시 선명해졌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뿌옇고 무거운 안개가 걷히지 않은 채였다. 점심시간, 좋아하는 야채김밥을 한 입씩 먹으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 빠르게 지나치는 자전거, 주인을 끌어당기며 신나게 달려가는 강아지까지—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분주한 모습들 사이에서 혼자만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 "마음도 세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 먼지를 세탁기에 휙 넣고 쾌속 모드로 돌려서, 따뜻한 바람에 보송하게 말리고, 내가 좋아하는 섬유 유연..

시간의 속도를 늦추는 법, 런닝머신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시간은 유독 길게 느껴진다. 밖에서 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창밖을 스쳐 가는 풍경도, 도로에 부딪히는 발소리도, 저 멀리 보이는 목표 지점도 없다. 대신 눈앞에 있는 건 변함없는 디지털 숫자뿐이다. 3분을 달렸다고 믿었는데, 겨우 40초가 지났을 뿐이다. 반면, 바깥을 달릴 때는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달리는 동안은 호흡과 속도에만 집중하게 되고, 어느새 몸은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거리는 짧아지고,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가고, 두 발을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시간을 신경 쓰지 않는 순간,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흐른다. 어쩌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하루하루는 러닝머신 위처럼 길게만 느껴지지만, 돌아보면 한 해가, 한 계절이, 그리고 어느새 한 세월이 순식간에..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 시계

몇년간 같은 버스 정류장을 이용한다. 출근과 퇴근, 하루에 두번씩 거쳐가는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을지 알 수 없는, 목련 나무들이 서있다. 나는 몇해째 그것을 나만의 '봄 시계'로 삼고 있다.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나무의 메마른 가지 끝에 몽우리가 조그맣게 맺히기 시작할 때 깨닫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이 자리에 설때마다, 몽우리들이 조금씩 통통하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슬슬 겨울 옷가지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언제나 도착해야 할 시간에 그곳에 다가와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계절의 변화를 속삭여준다.얼마 후면 목련이 가득찬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보드라운 크림색 얼굴을 화사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수없이 마주한 봄 앞에서, 여지없이 마음이 허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