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간 같은 버스 정류장을 이용한다. 출근과 퇴근, 하루에 두번씩 거쳐가는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을지 알 수 없는, 목련 나무들이 서있다. 나는 몇해째 그것을 나만의 '봄 시계'로 삼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나무의 메마른 가지 끝에 몽우리가 조그맣게 맺히기 시작할 때 깨닫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이 자리에 설때마다, 몽우리들이 조금씩 통통하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슬슬 겨울 옷가지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언제나 도착해야 할 시간에 그곳에 다가와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계절의 변화를 속삭여준다.
얼마 후면 목련이 가득찬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보드라운 크림색 얼굴을 화사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수없이 마주한 봄 앞에서, 여지없이 마음이 허물어져 뭉클해지고 말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봄을 채 다 누리지도 못한 것 같은데, 하나둘 떨어지는 목련 꽃잎을 바라보며 다가올 여름을 성급하게 상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계절이 오고, 가고, 다시 온다.
메마른 겨울 가지 끝에 맺힌 작은 봄의 몽우리들이 설렘을 전해오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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